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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처음 치러진 한식조리기능사 실기 상시시험 1회를 휘경동 시험장에서 보았다. 분명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도 66점의 아슬아슬한 점수로 합격했다.
시험 당일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시험장 구조는 어떤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때문에 떨어질거라고 생각했는지 시험 당일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대체로 오전 시험 과제가 쉽게 나온다고 들어서 10시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장에는 1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했다. 나보다 일찍 온 사람은 2~3명밖에 없었다. 시험 보는 인원에 비해 엘리베이터, 대기장 의자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가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시험용으로 조리복을 갖춰 입었는데 아뿔싸, 조리복이 7부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전날 귀찮다고 확인해두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지하 1층 매점에서 시험 준비물을 모두 판다고 알고 있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차분히 내려갔다. 다행히 긴팔 조리복을 팔고 있어서 큰 문제없이 구비할 수 있었다. 여유롭게 일찍 도착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리복, 조리모, 앞치마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후 자리에 앉아 실기 내용을 요약 정리한 종이를 몇 번이고 읽었다. 코로나때문에 한 사람이 두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있어 늦게 온 수험생들은 서 있어야 했다. 시험 2~30분 전부터는 감독관이 지켜야할 사항들, 유의 사항들을 안내해준다. 그러고나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신분증과 함께 본인 인증 및 2군데 사인하고 번호표를 받아 다시 자리에 돌아온다. (큐넷에서 출력하는 수험표는 필요 없다.) 전 타임 시험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10시 타임 시험 준비가 어느정도 진행된 다음 차례대로 시험장에 입장한다. 가져온 준비물, 겉옷 등은 모두 가지고 입장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10, 11~20 등 10개 정도 단위로 자리가 나뉘어져 있었고 1번, 21번 등이 완성품 제출대와 가장 가까웠다. 난 10번이었고 제출대와 가장 먼 뒷 자리였어서 최소 2분 전에는 완성품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리대는 1개당 좌, 우 두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때문인지 조리대 1개당 좌측에 1명만 배치되었다. 예전에 양식 시험을 볼 때는 바로 옆 자리에 다른 수험생이 있어서 그 사람 페이스에 휘말리는 등 좀 신경쓰이고는 했는데 나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건 편했다. 또 우측 조리대에 안 쓰는 팬이나 냄비를 올려둘 수 있어서 자리도 넓게 쓰니까 좋았다.
시험은 10시 타임이라고 해서 딱 10시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좀 더 늦어질 수도 있다. 먼저 조리대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가져온 준비물을 놓을 시간이 주어진다. 시험장에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통이 있긴 한데 구멍이 크게 뚫려 있어서 속이 다 보인다. 나는 가져간 검정색 비닐봉지를 그 위에 씌워서 사용했다. 팬과 냄비도 하단에 1개씩 배치되어 있긴 한데 역시나 상태가 무척 안 좋았다. 밥이나 지단처럼 섬세한 작업을 할 때는 못 쓸 것 같았다. 접시는 상당히 넉넉하게 종류별로 이미 조리대 위에 제공되어 있었고 양념도 시험문제와 상관없이 모두 한 곳에 담겨 제공되어 있었다. 조리대 확인 후, 문제지와 재료를 제공받고 재료를 하나씩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두부, 고기, 생선 같이 결과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재료의 경우 반드시 상태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교체를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꼼꼼히 검수 후 재료로 제공되는지 내가 시험볼 때는 아무도 교체를 요청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 마음속으로 어떤 과제부터 진행할지, 어떤 순서로 할지 대강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둔다. 나의 경우 제육구이와 홍합초가 시험문제였다. 원래 정석으로는 제육구이부터 먼저 손질해서 양념에 재워두고 홍합초를 나중에 해야했는데, 첫 시험이다보니 멘붕이 와서 뭐부터 해야할지 시험 시작 직전까지 사실 정하지는 못하고 각 과제의 과정만 열심히 입으로 되풀이해보았다.
시험이 시작되면 교실 곳곳에 배치된 시계에 시험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그 아래에 현재시각도 나란히 표시된다. 3명 정도 되는 시험관들도 시험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시험장을 돌아다니며 수험생들이 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채점도 한다. 나는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일단 각 과제에 해당하는 재료를 접시에 나누어 두고 재료를 재빠르게 씻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도저히 두 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진행할지 머리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아까운 시간은 흐르고 있고 뭐라도 해야했기에 일단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는 홍합초부터 무작정 시작했다. 홍합 데칠 물부터 올리고 홍합 씻고 부재료들을 손질했다. 물이 끓자 홍합을 데쳤는데 아뿔싸! 족사 제거 안 한게 생각났다. 이때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족사 제거는 요구사항에도 없고 순서도 꼭 데치기 전으로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학원에서 배운대로 안 했으니까 멘붕이 온 거다. 그래도 시험관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시험관이 지나갈 때 (한번 데치기는 했지만) 일부러 족사제거를 꼼꼼히 하는 척했다. 그러고나서 양념장을 만들어 냄비에 올리고 홍합초를 완성해냈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또 크게 잘못한 게 있는데 바로 잣가루였다. 잣가루를 키친타올에 넣어 두었는데 정신놓고 작업하다가 그만 중간에 이거를 그냥 키친타올 뭉치인 줄 알고 물기 닦는게 써버린 것. 당연히 잣가루 다 흩어지고 쏟아지고 난리가 났다. 제법 많이 가루를 내놨는데 실수하는 바람에 시험관이 안보는 틈을 타 재빨리 다시 줍긴했어도 쓸 수 있는 양이 1/10로 줄어들고 말았다. 아아... 홍합초에 눈꼽만큼 잣가루를 올렸는데 그마저도 홍합초 물기에 젖어서 잣가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편썰기 한 생강, 마늘도 예쁘게 못 담았는데 잣가루까지 걱정할 수는 없었다. 일단 어쨌든 홍합초는 끝났고 제육구이를 하려고 시간을 보니 딱 30분이 남았다.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은 상황. 평소 고기 재단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일단 돼지고기 6장을 잘라냈다. 요구사항에 6장이라고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보통 그렇게들 하니까 6장이 목표였다. 그런데 포뜨기를 못하는 나에게 역시나 마지막 2장이 너무 어려웠고 맨 마지막 장은 거의 다른 것들에 비해 반토막이 날 정도로 이상하게 잘라졌다. 여기서 2차 멘붕.. 구이, 전같은 것들은 크기의 일관성이 중요하댔는데 완전 망한거니까. 그래서 1개를 뺄까 하다가 일단은 그냥 더 많이 내는 거 좋을 거 같아서 그냥했다. 그러나 진짜 진정한 문제는 마지막 2장 포뜨기를 할 때 손을 베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고기를 잡는 손에 칼이 잠깐 닿았던 거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 끝부분이 살짝 베어 있었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박사부님이 시험 도중에 손을 베면 그건 기능이 없다고 판단되어서 불합격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그랬는데 덜컥 겁이 났다. 3차 멘붕이 제대로 왔다. 원래 손 다치면 손 들고 말하라고 그랬는데 나 다쳤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러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거 같아서 집에서 챙겨온 밴드를 잽싸게 감았다. 시험관이 안보게 하려고 빨리 했는데 한 시험관이 마침 밴드를 감고있을 때 내 뒤를 지나갔다. 딱히 뭘 적거나 그러지는 않고 보통 걸음걸이로 지나갔는데 그래도 아무튼 내가 손을 벤 장면을 봤으니까 무조건 나에게 마이너스일거라고 생각했다. 하 진짜. 이때 제일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도 좀 남았고 포기하기엔 아까워서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고기 6장을 칼 끝으로 앞, 뒤 연육 작업하고 크기 재단을 하는데.. 5x6cm가 감이 제대로 안 오는 것이었다. 박사부님이 손가락으로 cm 재는 게 제일 꼴사납다고 하셨지만 도저히 그렇게 아니고는 제대로 재단을 못하겠어서 시험관이 안 볼 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손가락으로 재서 겨우 겨우 얼추 크기에 맞게 잘랐다. 그리고 이때 재단을 좀 서툴게해서 그런지 시험관이 내 뒤에서 뭔가를 적어갔는데 4차 멘붕이 왔다. 재단에 힘을 빼느라 시간도 엄청 많이 지나가 있는 상황.. 15분 정도 남았던 것 같다. 고기는 안 익으면 아예 실격이니까 최소 실격이라도 면하려면 양념에 재워둘 수 있는 시간은 2~3분 정도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여기서 5차 멘붕. 학원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양념에 충분히 재워두지 않으면 구울 때 양념이 다 흘러내려와 돼지고기 하얀살만 남을 거라고 경고하셨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아끼려고 고추장 양념을 초스피드로 만드는데 여러번 멘붕이 왔기 때문에 홍합초 하려고 다져 둔 파, 마늘을 냅두고 다시 새롭게 파, 마늘을 다지느라 소중한 시간을 까먹었다. 참고로 시험장에는 정말로 파 2토막, 마늘 4알 정도로 넉넉히 주는데 쓸만큼만 빼놓고 나머지는 검정 비닐봉지에 잽싸게 버리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되는대로 돼지고기를 양념장에 막 바르는데 시험관이 뒤에 와서 또 뭘 적어갔다. 시험관이 뭐만 적어가면 잘못한 거 같아서 등골이 서늘해진다. 양념장에 다 발라두고 재워두고 뭐고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석쇠를 불에 달궜다. 이때도 평소같았으면 조신하게 중약불에서 천천히 살짝만 달궜을텐데 이땐 정신이 반쯤 나가 있고 마음이 급하니까 중강불에 석쇠가 빨개질때까지 달궜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석을 지킨다고 기름 먹이려고 접시에 석쇠를 놓고 기름 묻힌 키친타올을 댔는데 그 순간 "치익~~~~~"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뒤를 지나가던 시험관이 엄청 열심히 뭔가를 적었다. 아.뿔.싸.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다. 이런 소리 나면 안 될 거 같은데 났으니까 엄청 감점이겠지, 이런 생각이 나면서 우울해졌다. 그치만 시간 내에 할 거는 해야 하니까 손으로는 석쇠 앞뒤로 기름 묻힌 후 양념장 묻혀 둔(절대 재웠다고 볼 수가 없는) 돼지고기 6장을 올렸다. 이때 한 10분 정도 남았던 것 같다. 최소 5~8분은 익히고 다 익자마자 바로 제출하는 것으로 시간 계산을 하고는 중강불에 뒤집어가며 꼼꼼히 익혔다. 고추장 양념이니까 너무 불을 세게 하면 타버리고 그렇다고 약불에서 천천히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좀 중강불에서 골고루 불을 쬐어가며 익혀야했다. 양념에 제대로 재우지 않아서 고추장 양념이 흘러내리고 하얀색 고기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고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고기가 완벽하게 하얗게 익어가는 데에 더 중점을 뒀다.
카운트다운 시계가 3분을 가리켰을 때 제출할 접시에 제육구이를 나란히 놓았다. 손톱으로 겉에 탄 부분을 겨우 몇 개 뗴어낸 후에 2분이 남았을 때 제육구이 접시와 홍합초 그릇을 들고 제출대로 뛰었다. 수험생들의 마음이 급한 것을 아는지 도우미 아주머니분들이 내 번호에 맞는 곳에 접시와 그릇을 재빨리 놓아주시고 목 뒤에 집어두었던 번호표도 대신 떼어주셨다. 제출대를 쓱 훑었을 때는 의외로 빈 곳이 많아서 놀랐다. 그런데 역시 그 와중에도 엄청 잘 구워진 제육구이들이 몇 개 보여서 역시나 이번 첫 도전은 합격과 멀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제출을 하고 나서도 딱히 여유는 없다. 다음 타임 시험이 진행되어야 하니까 재빨리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해야 한다. 뒷정리도 위생 점수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용했던 접시, 그릇은 모두 깨끗하게 설거지한 후 물기 제거해야 하고 조리대도 닦고 물기제거해야 한다. 난 손이 느려서 이 모든 것을 빠른 시간 내에 다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도구와 조리대는 깨끗하게 닦고, 내 조리도구들은 대충 씻고 그냥 되는대로 가방에 우겨 넣고 나왔다.
족사 제거 순서 틀렸고 제육구이 제대로 재워두지 않아서 양념 많이 흘러내렸고 중간에 손까지 베였다. 설거지도 중간에 하나도 못한 채 개수대에 쌓아놓기만 했다. 이런 연유로 당연히 불합격이라고 생각했고 결과 발표 및 다음 시험 접수까지 3주간 박사부님 영상을 외우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66점이라는 점수로 원패스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제육구이는 점수가 낮았고 홍합초 점수가 더 높았다. 역시 한식조리기능사 실기는 작업과정이 과제당 각 30점으로 높고 완성품은 15점이니까 완성품이 좀 허접해도 위생 잘 지키고 순서, 과정을 빠짐없이 해내기만 하면 합격에 필요한 각 30점 이상은 받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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