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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8월정도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농사는 '김장'을 위한 농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간단히 가을에도 자라는 잎채소만 기르면서 9~10월쯤 수확하는 고구마가 목표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김장을 위해 무, 배추, 쪽파 등을 심는다. 2019년에도 별다른 노력없이 김장배추와 김장무를 잘 길렀던 기억이 있어 2020년에도 또다시 도전을 했다. 


나의 애간장을 태웠던 김장배추

처음 배추 모종을 심으면 '정말 이게 배추가 되나...' 싶을 정도로 볼품이 없다

8월까지도 적지 않은 비가 계속 쏟아졌기 때문에 언제 밭을 갈고 배추를 심을 건지에 대해 쉽사리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작년엔 9월 초에 심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9월 첫째 주에만 심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8월에 비가 와도 무시하고 밭을 정리하러 갔는데 벌써 김장배추를 심어놓은 텃밭이 몇몇 있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서 모종을 사러 갔는데 모종이 2종류이고 한 종류는 이미 너무 늦어 심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꼭 심고 싶기에 다른 모종을 사와서 밭에 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말을 한마디씩 보탠다(!).. "작더라두 그냥 한번 심어보려구요~"라는 설명을 계속 해야했는데 마음 속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래서 상반기때보다 훨씬 더 자주 작물을 살피러 밭에 나갔던 것 같다.

왼쪽부터 9월 11일 / 18일 / 22일

배추 모종은 나의 애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처음엔 정말 더디게 자랐다. 9월 6일 모종을 심었는데 2주가 다 되도록 떡잎이 그대로 있고 새로운 잎은 몇 개 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다른 텃밭 배추들은 제법 잎이 커지면서 곧 있으면 결구할 것 같은 태세를 취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텃밭에는 좀 신경써서 추비를 잘 주기로 했다. 처음 밭을 갈 때는 급했기 때문에 기비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 배추는 처음 자랄 때 확 자라야 한다고 들어서 2주, 1주, 1주 간격으로 수확하기 한 달 전까지 꼼꼼하게 추비를 줬다.

9월 27일 / 10월 4일 / 10월 19일

추비 덕분인지 9월 말부터는 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10월부터는 결구를 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치만 저 정도 시기에 크게 자란 다른 텃밭 배추들은 이제 거의 완전한 배추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컸지만 11월 말에 수확한다고 해도 과연 배추의 모습을 갖춘 상태로 수확할 수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 

잎이 어느정도 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추비 외에도 해충 방지를 위해 막걸리 희석액을 뿌려주며 정성을 다했다. 근데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아 이후에는 목초액을 희석해서 뿌려줬는데 이것도 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 텃밭에서 뿌려대는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이 덕분에(?) 텃밭 전체에 노랑 나비, 진딧물같은 해충 자체가 별로 없어서 우리 텃밭에도 해충은 거의 없었다. 

10월 22일 / 11월 28일

10월 26일부터 9급 출근을 했기 때문에 11월에는 자라는 모습을 사진에 못 담았다. 아무튼 추비 + 알맞은 일조량/날씨 덕분에 10월 말부터 배추는 폭풍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벌써 일찍 심으신 분들은 배추를 수확하기 시작했고 아직 제대로 결구된 배추가 몇 개 없었던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수확할 수는 없어 더 속이 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11월 말에 수확하기로 결정했다. 11월 둘째주 되니까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간혹 이른 새벽에는 영하까지 내려갈 때도 있어서 급하게 고추끈 남은 걸로 배추를 묶어줬다. 그리고 대망의 11월 28일에 드디어, 배추를 수확했다.

왜 농촌에 사시는 분들이 1t 트럭을 몰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배추 수확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냥 유투브로 대충 한 번 보고 가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고추끈을 풀고 식칼로 밑동을 자르고 너무 질긴 겉잎을 떼낸 다음에 트렁크에 가지런히 싣는 지난한 작업이 계속됐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서 나 혼자 약 45개에 달하는 배추를 수확했다. 힘들었지만 9월에 걱정한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배추들이 실하게 잘 자라줬기 때문에 정말 뿌듯했다. 배추 심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 했던 옆 텃밭 아주머니도 실하게 잘 나왔다며 조금 씁쓸하게 웃어주셨다.(왜냐면 본인은 안 심으셔서...)


비싼만큼 제 값을 하는 김장무

9월 14일 / 9월 22일 / 10월 4일

애간장을 녹여댔던 김장배추에 비해 김장무는 저 혼자 알아서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값이 비싼 덕이었을까? 배추는 모종 50개에 7천원 정도였던 반면, 무는 씨앗 한 봉지(30g)에 무려 만원이나 했다. 씨앗이 많이 들어있긴 하지만 평소에 비싸봤자 한 봉지에 3천원 정도 하던 씨앗을 만원 정도 주고 사니 뭔가 호갱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뿌리자마자 새싹도 엄청 금방 올라오고 배추와 다르게 날이 갈수록 꾸준히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배추의 설움을 무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무도 줄뿌림을 했다보니 어느정도 자랐을 때 솎아줘야 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의 식감과 완전히 다르다. 엄청나게 부드럽다. 아린 맛도 거의 없고 좀 달착지근한 맛이 더 강하다. 무청을 워낙 좋아해서 솎아서 나올때마다 된장국을 끓여 먹었는데 이렇게 끓인 아기 무는 입에 넣자마자 그냥 뭉크러질 정도로 부드럽다. 이런 무청과 아기 무는 무 농사를 짓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 같다.

10월 22일 / 11월 28일

무는 10월 말부터 거의 수확해도 될 정도의 비주얼이었다. 무는 배추보다 좀 더 일찍들 수확하는 것 같았지만 난 여력이 안돼서 배추 수확하는 11월 말에 같이 수확했다. 근데 의외로 좀 짧기는 했지만 뚱뚱하고 실한 김장무를 수확할 수 있었다. 배추는 큰 것, 작은 것 사이에 격차가 심했는데 무는 그런 것없이 일정하게 대부분 다 잘 자라줬다. 그래서 엄청 솎는다고 속았는데도 불구하고 40개가 넘는 무를 수확했다. 너무 맵지도 않고 달달한 게 맛이 아주 좋았다.


직접 기른 배추와 무로 하는 김장

하반기 밭을 시작하면서부터 엄마한테 올해 배추와 무는 내가 가져다 드린다고 호언장담을 해놨다. 다행히 배추와 무가 잘 자라줘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배추는 반을 갈라보니 노란 것이, 크기는 작고 통통해도 속이 잘 차올라서 다행이었다. 배추가 너무 질기지도 않고 달달해서 맛도 좋았다. 작년에 배추 절이는 것에 좀 실패했던 터라 올해는 엄마가 무척 조심하면서 정성껏 배추를 절이셨다.

아쉽게도 난 시간이 안돼서 못 도와드렸지만 가족들이 정성껏 김장소도 만들고 김장을 해줬다. 덕분에 2020년 하반기 내내 마음 졸이며 기른 배추와 무가 우리집 1년치 김치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2021년인 3월인 지금은 김치냉장고에서 알맞게 잘 익는 김치를 먹는 재미로 산다.


배추와 무가 생각보다 잘 되기는 했지만 갑자기 연말에 가격이 급격히 오른 쪽파를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는 점, 대파를 단 하나도 심지 않았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리고 2019년에 너무 배추를 짜게 절여서 실패했기 때문에 2020년에는 그 점에 신경을 많이 써서 절였는데 되려 좀 덜 절여진 점도 좀 아쉽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작물과 요리에 대해 조금씩 더 배워가고 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시도해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2021년에도 얼른 거취가 결정되고 텃밭도 임대하고 또 나름의 텃밭 모험을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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