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상>/공시생 일기

20200214

날고싶은오리 2020. 2. 14. 04:43
반응형

3월 국가직 시험을 한 달 좀 더 남겨둔 오늘.

마음이 뒤숭숭하고 잠이 오지 않아 깊은 새벽에 일기를 쓴다.

 

일정한 양의 지식을 반복적으로 학습하여 그에 숙달해지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있는 작업이지만

하루종일 그것만 하고 있다 보면 사람이 심리적, 정서적으로 조금 메마르고 지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전에만이라도 푹 잘 수 있도록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 되고자 책을 읽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부터는 그런 이유로 내 인생 Best 책으로 꼽는 알퐁스 도데의 "꼬마 철학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꼬마 철학자"는 알퐁스 도데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불우한 삶을 산 에세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목소리로 풀어낸다. 난 에세트의 이야기가 마치 내 얘기같아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한없이 운다. 때문에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편하게 만들려는 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되려, 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 가족의 그것들에 대해 걱정만 더욱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에세트 가족처럼 어찌보면 조금은 불우한 환경에 놓여 있다. 외벌이로 자영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4년 전, 20년 넘게 유지해왔던 사업을 정리하셨다. 하지만 당장 길거리에 내쫓기고 먹고 살 양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낙관적으로 상황을 봐 보자. 아버지가 사업을 정리하신 덕분에 가족들이 함께 살 빌라 전세금과 얼마간 쓸 수 있는 생활비는 마련했다. 다행히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평소 절약을 해온 터라 저금해둔 돈이 제법 있어 그 돈을 태워가며 공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집에 손을 벌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끔 도움을 드리고 있다. 또한 둘째 동생도 어엿한 성인이라 알바를 하며 제 생활비는 제 손으로 벌고 가끔 가족을 위해 망설임없이 그 아까운 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사업을 정리하면서 남긴 얼마간의 돈은,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5인 가족이 몇 년 버티지 못할 만큼 적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기는 요새에 부모님은 앞으로 20년은 더 사실텐데 그러자면 부모님이 일을 하셔서 좀 더 저축해놓으시든가 삼형제가 돈을 버는대로 조금씩 모아 용돈을 드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막막하다. 아버지는 사업 정리 후 이따금 일일용역을 나가시거나 아르바이트를 하셨는데 그마저 쉽지 않으신 모양이다. 으레 요즘 50대가 그렇듯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시는데 일단 시험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돈을 아끼려다보니 항상 무료 인강, 무료 교재로 독학을 하게 되어 더욱 쉽지 않아졌다. 엄마는 그나마 복지 쪽으로 정규직은 아니지만 꾸준히 일을 해오셔서 이번에도 어렵지만 일자리를 구하셨다. 하지만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인데다 막내가 이번에 체육특기생으로 재수를 결심하면서 돈 나갈 곳은 여전히 많다. 

 

그나마 내가 우리집에서 중소기업이나마 정규직으로 꾸준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안정적인 직장이긴 하지만 적성 운운하며 갑자기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기약없는 공시생활을 시작했으니. 한편으로는 가족들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몇 년만 더 다니고 그만뒀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한 달만 더 다녔으면 대리도 달고 돈도 조금 더 모았을텐데, 동생 재수 뒷바라지도 좀 더 수월했을텐데, 이런 생각이 공부하는 와중에 문득 문득 든다.

 

그러다가도 곧 마음을 다잡고, 아니야, 내 삶은 나를 위해 있는 걸,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은 결국 불행해지기 마련이고 우리 가족은 내가 그런 불행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을거야, 난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라고 나 자신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오늘 밤처럼 "꼬마 철학자"와 같이 나의 감수성을 자극 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눌러져 있던 온갖 고민과 걱정이 다시 나를 휘감는 것이다.

 

사실 이미 시작한 것, 돌이킬 수도 없다. 일단 2020년 올해 시험은 쳐야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봐야 한다. 2020년까지다. 공시생활을 버티기 위해 저축해놓은 돈은 올해까지만 유효하다. 벌써 5년간 다닌 회사서 받은 퇴직금은 다 태웠고, 6년동안 유지해두었던 청약저축마저도 눈물을 머금고 깬 상태이다. 만약 올해 시험에서 전부 떨어지면 내년에는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임에도, 고3때 너무나도 괴롭게 수험생활을 했던 나는 공무원 공부만큼은 좀 덜 괴롭게 하고 싶어서 약간 편안하게(?)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8개월 만에 단기합격할 정도로 하루에 15시간씩 몰아서 공부하는 어느 훌륭한 수험생과는 다르게 매일 매일 적은 양이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적은 나이지만 30년을 살다보니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하나, 스트레스를 덜 받고 조금 덜 하나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성과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를테니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제법 나 자신을 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내가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하루에 3시간씩 일하는 계약직인 우리 엄마를 제외하곤 우리집 4명이 전부 백수인지라, 또 내가 언제 합격할 줄 모르는 기약없는 공시 백수이고 또 공무원이 된다 한들 9급으로 시작해선 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인지라....

오늘은 왠지 잠이 쉽사리 안 온다.

반응형
댓글
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