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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시생 일기

공시생의 어려움

날고싶은오리 2019. 10. 2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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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공시 바닥에 뛰어들 때만 해도 나는 정말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사람들과 부대껴 일하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 한 나는, 혼자 책상에 앉아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 공시 생활이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회사는 열심히 일해도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상황도 많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면 그게 곧 나에게 전부 득이 되는 선순환 구조이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무엇보다도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즉, 공시 생활은 재밌을 것이고 또한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무원이 되고 안 되고는 생계가 달린 일인데, 간혹 공부가 하기 싫다거나 게을리 했다는 공시생들의 푸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가를 직접 공시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일단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 합격 후기들을 보면 대개 최소 순수하게 6시간은 책 붙잡고 앉아서 내용을 머리에 넣어야 하는데 이 순수 6시간이 나오기 위해서는 책상에 최소 10시간 이상은 앉아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딴 생각하거나 잡스러운 일을 하다가 흘려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한 달도 아니고 거의 쉬는 날 없이 6개월 이상 하루 10시간씩 책상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책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 손목, 허리, 목, 어깨 부분이 특히 아프다. 공시생활 초반에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면연력도 너무 떨어져서 다른 병까지 얻어 걸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는 면연력이 저하되지 않게 밥, 수면, 스트레칭 등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무척 고통스럽다. 본래 사람은 육체를 혹사시키면 정신적으로는 가벼운 법이다. 거꾸로 육체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있으나 (물론 위에 적었듯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육체노동에 '비하면' 편한 것이니까) 머리로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면 공부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잡생각이 많이 들어 기본적으로 머리가 항상 복잡하다. 게다가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 불평하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특히 공시 생활이 6개월 이상 접어들게 되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6개월 정도면 이제 어느 정도 내용을 숙지하고 본격 암기나 점수 올리기에 속도를 낼 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본인이 지난 6개월간 공부한 것 중 머리에 남지 않고 휘발된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공부해서 머리에 안착한 내용보다 휘발된 게 훨씬 많게 느껴지는데 공무원 공부 특성상 내용은 정말로 방대하고 지엽적이며 암기할 것들 투성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까먹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난 특히 9월 중순~말이 정말 보내기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직렬 전공과목을 2회독 하려고 기출문제와 함께 기본서를 2달 여만에 펴들었는데 정말 거짓말 않고 조금 어렵다 싶은 부분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본서를 찬찬히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기출만 보자니 내용은 이해가 안 가는데 기계적으로 발췌독이랍시고 기본서와 글자 대 글자를 매칭시키자니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결국 잘 모르는 부분만 다시 인강을 들으면서 기초 내용을 습득했다. 어쩌면 이게 처음부터 맞는 방법이었을 수 있고 난 단지 시행착오를 겪었을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당사자는 너무 당혹스럽고 기운이 안 나고 방황하게 된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고 좌절하고 있다.ㅠㅠ

공시 생활 초기에는 하루에 10시간 공부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고 정말 재밌었는데, 요즘엔 어떤 날은 4시간도 버거울 때가 있다. 특히 1회독 내용이 많이 휘발된 과목일수록 좌절하는 정도가 더 심하고 공부할 맛도 안 난다. 또한 하루 종일 집에 자가 감금을 하고 책상에만 앉아 있다보니 사람 정신이 정말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다. 갑갑하고 갇힌 느낌? 이 모든 상황을 나 스스로 선택하고 공부도 내가 하고자 하여 하고 있지만 말할 수 없이 자유가 박탈된 느낌을 받는다. 오늘 하루를 잘 마쳐도 또 다시 내일 변함없이 책상 앞에 앉아야만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기 암시와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적절한 휴식이 정말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다른 공시생들도 얼마나 나처럼 힘들까. 그나마 나는 퇴직금과 저축해 둔 돈이라도 있어 돈 걱정은 없는데,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고학을 해야 하거나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용돈을 타서 공부하는 그들은 얼마나 더 쪼여올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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