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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조리기능사에 드디어 합격했다.
작년 겨울부터 올해 여름 초까지. 길고도 길었다.
그 여정을 한 번 처음부터 훑어보려 한다.
1. 마음 먹기
우리 회사는 나름 복지로 조리기능사 준비를 위한 보조금을 준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양식조리사를 따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업무적인 면에서 레시피를 번역하거나 혹은 레시피를 만들거나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배워놓는 것은 득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조리복을 입고 조리를 한다는 건 나의 자그마한 로망이기도 했다.
2. 학원 등록
대학생 때도 조금 알아봤던 바에 따르면 혼자 책으로 공부해도 되지만 학원 다니는 게 좋다고 한다. 33가지에 달하는 조리항목을 전부 다 재료 사서 하기 힘드니까. 그래서 고민없이 일단 내일배움카드부터 발급받고 집 가까운 조리학원에 직장인반으로 등록했다.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을 다녀서 그런지 내일배움카드 발급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조리학원은 여러 군데를 알아보았는데 학원마다 강의 일정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그냥 시간 맞고 집 근처인 학원에 등록했다. 나의 경우, 동서울요리학원. 월,수,금 주3일. 일 끝나고 가야 하니까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약 2개월 반 코스. 30만원인데 18만원이 내일배움카드에서 나오는 보조금, 나머지는 12만원 회사 보조금으로 결제. 시설은 별로, 특히 등록했던 반의 선생님은 더 별로였다. 그래도 한 번 결석 빼고 꿋꿋이 다녔다.
3. 필기 시험 (독학)
학원다니면서 독학으로 시중에 있는 양식조리사 책을 사서 공부했다. 아무래도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다 보니 이론을 확실하게 모르더라도 자주 나오는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익히면 시험에서 합격점을 넘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시험에서는 기존의 기출문제와 유사한 문제가 많이 나왔고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다.
4. 연이은 (실기) 시험
어차피 레시피 거기서 거기니, 학원 다니는 와중에 요리가 손에 익었으니까 시험 보라던 선생님 말 무시하고 끝까지 다 배운 다음에 시험 등록했다. 2월에 수업 끝났는데 3월에 워크샵이 있어서 첫번째 시험은 3월 중순에 신청했다. 낙방. 두 번째 시험은 실격. 세 번째 시험 합격. 자세하게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st : 46점 탈락 (인천)
#메뉴: 이탈리안 미트 소스 / 치킨 커틀렛
#낙방 이유(예상):
1. 이탈리안 미트 소스 조리 과정 틀림. 재료 너무 대충 다짐. 농도가 안남.
2. 치킨 커틀렛 조리 과정 맞았으나 기름 너무 조금 두르고 튀김. (안전 점수 감점)
3. 기름 온도 조절 실패해서 색 너무 난데 비해 속은 안 익음.
4. 전반적으로 허둥댐. 칼 놓는 방향도 모르고 조리대에 물기가 너무 많고.. 재료 받자마자 각 레시피에 따라 구분해놓지도 않는 등 불안정한 자세. 조리 전/중/후 자세도 모두 채점에 포함됨.
>2nd: 실격 (서울)
#메뉴: 프렌치 어니언 수프 / 서로인 스테이크
#낙방 이유:
1.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할 때에는 일정한 크기로 양파를 썰어야 하는데 어떻게 썰어야 되는지 몰라서 한참 고심하다가 시간 겁나 초과.
2. 수프를 끓이면서 스테이크 재료들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시간을 엉망으로 사용&허비.
3. 시간 조절 실패해서 서로인 스테이크 레어로 냄...
>3rd: 합격 (인천: 서울에 응시하는 것을 실패해서 급한대로 인천에서 봄)
#메뉴: 프렌치 어니언 수프 / 치즈 오믈렛
#합격 이유
1. 프렌치 어니언 수프 떨어졌던 메뉴라서 잘 알고 있었음. 둘 다 조리과정 하나도 안 틀리고 시간 운용도 빠짐 없이 했음.
2. 오믈렛 모양은 완전 망쳤으나 (내 생각엔 60%정도만 완성된 모습이었음), 다들 망해서 상대적으로 잘 한 것 같아 보여 합격된 듯.
-> 집이나 학원에서 연습하던 불 세기랑 달라서 당황. 오믈렛은 불 세기 조절이 관건인 만큼, 여러가지 조건의 불 세기에서 연습하는 게 중요한 것 같음.
두 번째 실기 시험 실격 후 '난 조리의 길이 아닌가 보오. 막손인가 보오.'라며 좌절의 늪에 빠졌었다. 허나, 곧 될 때까지 해보자,란 오기가 생겨 네이버와 유투부를 강의 영상을 전부 봤다. 의외로 좋은 영상들이 많다. 가장 어렵다는 치즈 오믈렛은 정말로 계란 3판을 깼다. (며칠 내내 저녁, 아침으로 오믈렛만 먹었음) 이 때 중요한 건 무조건 많이 해보는 게 아니라 오믈렛 잘 만드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내 오믈렛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왜 실제로 잘 되지 않는지 분석한 뒤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기시험을 볼 때는 메뉴마다 필요한 재료가 적힌 종이를 준다. 그래서 재료 자체를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 재료를 어떤 순서대로 어떻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쓰면서 준비할 것인지 아예 시험 공부하듯 요약정리+암기하면서 반복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딱 시험날에는 메뉴와 재료를 보자마자 기계적으로 재료를 배치하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부터 준비해야 한다.
연습할 때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니,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올라 몇 개 같이 올려둔다. 비록 삼수를 하긴 했지만 참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원래 3월 말 정도에 합격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3개월이나 늦춰져서 6월 말에서야 양식조리기능사 합격증을 손에 쥔다.
솔직히 '기능사'라고 하면 가장 낮은 단계의 국가자격증이고 여러 후기를 보면 쉽게 딴 사람들도 많고 해서 나도 좀 쉽게 생각했던 면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뛰어들어보니 조리를 처음 제대로 하게 되어 생각보다 공부해야할 것도 많았고 익혀야할 것도 많았다. 이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메뉴를 매일 하는 현업의 조리사님들이 무척 대단해보였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도 좀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 또 배운다.
무엇이든 오만한 마음으로 쉽게 생각하면 결과도 그만큼 가볍다는 것을.
또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진심으로 나아가면 그만한 결과가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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