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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변화를 지각하며 살아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담은 영상을 봤다. 메세지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딴지걸고 싶지 않지만, 메시지의 종착점이 '남들보다 세상의 변화를 빨리 읽어 그 틈을 파고 들어가, 블루마켓에서 돈을 많이 버세요. 그게 성공한 인생입니다'인 것같아 씁쓸했다. 만약 말씀하시는 분이 '내가 아는 성공한 분들의 연봉을 합쳐보니 1조가 되었다.'라는 말만 안했어도 그 사람의 말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것이다.
성공은 백지연 아나운서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종착지에서만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이라는 단어는 감히 우리가 살아생전 입밖에 쉬이 꺼낼 수 있는 그런 쉬운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카카오톡 사장이 엄청난 돈을 벌어서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시장이 또 변해서 카카오톡이 어떤 위기에 처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차라리 그보다, 우리는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늘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살까 고민한 끝에, 무엇인가 성취해냈다, 라고 말해야한다.
우리는 일단 매일 매일 산다. 숨을 쉬고, 여러가지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면서 존재해 나간다. 그 와중에 우리는 죽기직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하는 백지와도 같은 임무를 얻는다. 그 인생은 우리가 온전히 이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의 기쁨도 슬픔도 실패도 성취도 모두 우리의 몫이다. 다만 우리는 엄청나게 수많은 작고 큰 선택들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백지가 차츰 차츰 채워져 나가는 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그런데 이왕이면 이 인생을, 백지 도화지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꾸며나갈 것인가, 내가 하고싶은대로 꾸며나갈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관점때문에 내가 '성공'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기도 하나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연을 너무 좋아해서 그냥 숲속에 땅을 하나 사놓고 동물을 기르고 집 주위 나무, 산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면 그 사람 인생을 실패한것인가? 아마, 성공이라는 말보다도 '바로 이러한 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라고 일정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들을, 현대인을 끼워맞추려고 하는 사상이 아주 밉살스럽고 꼴보기 싫은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자신의 도화지를 어떻게 꾸밀것인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이 사람이 말하는 '관점의 변화'인 것 같다.
나는 성대에 다니고 있다. 공부를 못해서 수능을 잘 못봤지만, 운이 좋게도 논술을 성공했기 때문에 성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머리가 안좋고 집중력이 없어서 공부는 못했지만, 내가 어떤 꿈이 있을 때, 그 꿈을 조금이라도 더 현실에 가깝게 실현시키려면 4년제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신을 매번 칠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보려고 하고, 모의고사도 비록 늘 점수가 좋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내 실력선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논술도, 학원에서 숙제도 제대로 안해간 적이 많지만, 쓸떄만큼은 뇌를 쥐어짜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내 글을 써보려고 노력했었다. 다 이러한 과정이 밑바탕이 되어 성대 합격이라는 성취를 이뤄낼 수 있게 해줬고, 나는 내가 머리 굴리는 것에 비해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되어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대학을 다니더라도 내 친구들은 성적이 훨씬 좋았는데, '성대에 밖에 못오게 되었다'라고 생각하여 자신감을 상실하고 우울한채로 대학을 혼자 다니는 애들도 많았다. 그때 퍼특 나도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덕분에 자신감에 차있는 채로 3년동안 재밌게 학교를 다녔다. 신입생때는 그 얼마나 가슴이 터질듯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래저래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려고 노력하고 일을 벌리기도 많이 벌렸었다. 그 얼마나 재밌었는지!
이렇듯 관점의 변화는 인생을 단지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고 밝고 재밌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은,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이용해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배고픈 시민들의 관점을 부르주아들이 바꿈으로써 인류역사의 엄청난 획을 그은 사건이 되었다. 아마,나는 19세기에 일어난 이 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사회가 상당히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789년의 이 프랑스대혁명은 처음의 의도는 좋았지만 후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기요티에 해버리고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그리 좋지 많은 않은 결론은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들 중에는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물론 프랑스대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던 영국작가들이 상당수겠지만-ㅅ-) 어쨌든 몇몇 관점 바꾸기를 선동하는 자들에 의해, 상당수 많은 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관점 바꾸기를 시도한 자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몇명이 모여있는 무리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4명이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치자. 여행이라는 것은 trajet를 짜고 계획에 맞춰서 지역을 관찰한다든가 음식을 맛본다든가 하는 '직접체험'의 장이다. 그런데 분명 이 4명에서도 한 두명이 전두지휘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비록 모두가 동갑에 아주 친한친구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사람의 성향, 이를테면 먼저 전두지휘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에서도 유래하지만, 그냥 집단에서 이러한 상황이 자주 보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발빠른이가 먼저 이끌면 나머지는 그에 저항하기 귀찮거나 참여하기 난감해서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일에) 그냥 아무생각없이 남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본인에게 해만 되지 않는다면, 별로 상관없으니까. 이것이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여행은 그룹의 일이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도화지 한 귀퉁이를 채워나가는 것이므로 개인도 그룹의 일에 참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아, 끝도 없이 생각하면 어렵다. 논리가 없어서 상황의 정리도 되지 않는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관점의 변화는 중요한 말이지만, 그것이 꼭 물질만능주의가 설정해놓은 '부자'라는 성공의 틀 안에서 이용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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