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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먹는 거

맥류의 파성

라왕 2020. 2. 14.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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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기능사 필기를 독학으로 공부할 때 맥류의 '파성'이라는 개념이 많이 낯설었다.
문제에 상당히 자주 나오는 빈출 개념인데, 알 듯하면서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무작정 외웠던 기억이 있다.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있을까 하여 간단하게 '파성'에 대해 정리해볼까 한다.


'파성'이란 추맥(가을에 파종하여 그 다음 해 봄에 수확하는 맥류)이 정상적인 생육을 하기 위해 일정기간 저온 환경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시골에서 살면서 보리(맥류 중 대표 작물)를 재배해보거나 혹은 재배하는 것을 익숙하게 봐 온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이 개념은 좀 낯설다. 왜냐하면 우린 추운 겨울엔 식물들이 다 죽거나 잠들고 따뜻한 봄이 되어야만 정상적으로 다시 생육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류와 같이 겨울을 나는 작물들은 의외로 추운 겨울을 반드시 지나야만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 있다.

겨울(저온 환경)을 반드시 지나야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한 월동작물 (출처: Google)


왜 그럴까? 아마 근본적인 답변은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서 그럴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생겨먹은 월동 작물(대표적으로 맥류)은 일정 기간 저온 환경을 지나면서 영양생장을 지속하고 생식생장으로의 이행을 억제한다. 여기서 '영양생장'은 작물이 열매를 만들기 전까지 몸이 크는 기간을 말하는 거고 '생식생장'은 열매를 내는 기간을 말한다. 추운 겨울을 지날 때 열매를 내버리면 연약한 열매가 맺히고 익기도 전에 얼어 죽을테니, 따뜻해질 때까지 영양생장기를 지속시켜보자는 것이다. 어찌보면 맥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방법인 듯하다.

이러한 파성에는 '추파형'과 '춘파형'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추파형은 파성이 강하여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게 해줘야 하고 춘파형은 파성이 약하여 좀 쌀쌀하기만 한 늦봄만 통과시켜도 정상적으로 생육이 진행된다. 따라서 (추)파성이 높을수록 더 이른 가을에 심어서 저온 환경인 겨울을 충분히 지나도록 해야 하고, (추)파성이 약할수록 (=춘파성이 강할수록) 봄에 심어 저온 환경을 조금만 지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파성이 강하고 약하고를 재배학에서는 총 7등급으로 나눠 놓았는데 7급으로 갈수록 (추)파성이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추파성이 강한 맥류의 씨앗을 갖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가을에 파종을 못하고 해를 넘겨 버린 것이다. 즉, 파종 적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충분히 저온 환경을 거치면서 제대로 파성을 타파하지 못한 씨앗, 즉 충분히 '춘화'되지 못한 씨앗은 심어도 출수기에 이삭을 내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린다[좌지 현상].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인위적으로 '춘화'(=추파성 소거)할 수 있다. 씨앗에 수분을 주어 싹을 조금 틔운 후 저온(0~3℃)의 암실에 일정 기간 보관하면 춘화된다[종자 춘화]. 또는 싹을 조금 더 키운 후에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저온 처리를 할 수도 있다[녹체 춘화]. 이 외에도 단일 춘화나 화학적 춘화도 가능하다.

이렇게 완전히 춘화된 식물은 이제부터 생장할 때 파성과는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고온장일(높은 온도와 긴 일조 시간)이 더 중요한 생장 조건이 된다. 이삭이 빨리 나오려면 고온장일 조건이 받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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