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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차 신규 공무원은 일단 6개월차에 시보를 뗐으니 정식 공무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직과 부서의 분위기, 그리고 일의 순서 등을 이제 막 알아가는 햇병아리다. 아무리 회사생활을 해봤다 한들, 행정조직의 사고방식과 일처리 방식은 또 다른 별천지다. 하지만 조직과 조직 외부는 그런 신규 공무원에게 별로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 신규 공무원이 조직과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시간이 있다. 이것은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은 그런 예외없음과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가 꽤 객관적으로 느껴진 날이었다. 난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생각을 하면서 업무를 진행했는데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뒤늦게 그걸 깨닫고 수습을 하려 해보았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흘렀고 부족한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주니어 계급과 다르게 공무원 조직의 주무관은 권한도 크지만 책임도 훨씬 크다. 그래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지난 9개월간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나의 부족함과 못남을 탓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은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보라고 하신다. 같은 팀에 물어볼 사람도 팀장님 외엔 마땅히 없고 경험에 기반하여 판단을 내리기엔 경험이 당연히 없는 상태이다. 어느 정도 상황판단을 한 후에 결정을 내리기엔 근거와 경험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여 팀장님께 여쭤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라고. 판단해서 안을 가지고 오면 그때 그걸로 이야기해보자고. 그런데 난 스스로 괜찮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없지 않나?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지금은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어떤 지시를 받고 그 지시를 빈틈없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걷는 아기에게 왜 너는 재빨리 뛰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깐이나마 팀장역할을 해봤던 나로서는 팀장님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20년이나 공무원 생활을 한 경우에는 너무나도 업무와 조직이 익숙해서,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빈틈이 그 누구보다도 잘 보일 것이고 그렇다고 또 일일이 다 알려주고 (팀장님 표현대로) 떠먹여 주기에는 팀장의 올바른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는다는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실 것이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이는 상호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냥 어쩔 수 없이 혼"나"고, 어쩔 수 없이 혼"내"고 또 어쩔 수 없이 업무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혼나기도 싫고 내가 하는 일이니 업무에 빈틈이 생기는 것도 싫었던, 일견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그러나 오늘따라 웬일인지 정말로 그 어쩔 수 없음을 강렬하게 느꼈던 하루였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나 필요했던 거였나.

이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신규 공무원들이여, 어서 빨리 이 기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도 배움이 있었고 이로 인해 도움받을 날이 올거라 생각하며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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